안녕하세요.
하노이에서 테니스를 치고 있는 조용균입니다.
용균님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지금은 하노이에서 일주일에 네 번, 화요일과 목요일,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마다 테니스를 친다고 했다. 클럽도 두 곳이다. 하나는 직접 운영하는 하미테 클럽, 다른 하나는 한국인이 절반 정도이고 미국, 호주, 일본, 베트남, 아일랜드, 러시아 등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치는 다국적 클럽이다. 지금은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들리지만, 그가 테니스를 시작한 건 생각보다 늦었다. 테니스 경력 4년. 중간에 교통사고로 1년 정도 쉬었지만, 결국 다시 코트로 돌아왔다.
그가 처음 테니스를 시작한 계기는 식당 손님들이었다.
식당을 운영하던 중 테니스를 치는 손님들이 권유했고, 그렇게 라켓을 잡게 됐다. 그런데 시작하고 나서 불을 붙인 건 예상치 못한 인연이었다. 친한 형의 형수님이 전미라 선수였는데, 자신이 테니스를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하노이에 놀러 와 직접 레슨을 해줬다고 했다. 그때부터 더 제대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본인은 테니스 레슨을 받고, 대신 골프를 가르쳐드렸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즐겁기만 했던 건 아니다.
그가 더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처음 라켓을 잡았을 때의 감촉보다, 첫 테니스장에서 워밍업을 하던 순간이었다. 짧은 공을 제대로 앞으로 보내지 못하자 건너편 파트너의 표정이 먼저 보였다고 했다.
"이러면 나가린데..."
그 표정을 보며 그는 스스로 민폐라는 감각을 먼저 느꼈고, 레슨을 받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어떤 사람에게 테니스의 시작은 멋진 첫 타구가 아니라, 함께 치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초보 시절의 가장 큰 어려움도 비슷한 종류의 감정이었다.
그는 테린이라서 받는 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파트너가 뒤에서 "나 저 사람이랑 치기 싫다"라는 말을 한 걸 들었을 때가 특히 힘들었다고 했다. 클럽에 따라서는 테린이를 잘 받아주지 않는 곳도 있었다. 속상했지만, 그는 그 말을 자극제로 삼았다. 레슨을 정말 빡세게 받았고, 결국 시작한 첫해 테린이 대회에서 3위를 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했다. 혼자 시작했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그 첫해의 3위는 꽤 오래 남는 성취였을 것이다.
실력이 늘고 있다는 감각은 어느 순간 찾아온다.
그는 예전에는 레슨 영상이나 실제 레슨을 받아도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이제는 보인다고 했다. 공을 앞에서 맞추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길게 치라는 말이 뭔지, 그런 설명들이 비로소 몸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레슨받은 내용을 실제 게임에서 바로 적용해 써먹을 때, 그때 가장 크게 "아, 내가 좀 늘고 있구나"를 느낀다고 했다. 테니스는 오래 친다고 저절로 알게 되는 운동이 아니라, 어느 날부터 설명이 들리기 시작하는 운동인지도 모른다.
그 성장의 과정에서 가장 큰 도움이 된 사람도 있었다.
같이 치는 분들 중 60대의 고수가 한 분 있는데, 그분이 매번 게임 중간 짧은 시간에 스텝, 서브, 타구 포인트 같은 걸 하루에 한두 가지씩 알려준다고 했다. 용균님은 그 시간이 4년 테니스 인생 중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조언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본인은 오히려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반복되는 한마디가, 한 사람의 테니스를 바꾸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3년 전의 자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왜 이렇게 늦게 테니스를 시작했니. 지금이라도 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50이 넘어 시작했으니, 30대에만 시작했어도 어땠을까 싶다고도 했다. 그런데 그 말에는 늦은 시작에 대한 후회보다, 지금이라도 시작한 것에 대한 안도감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 늦게 시작했지만, 그래서 더 진심이 된 사람의 말처럼 들렸다.
그의 테니스 인생에서 더 흥미로운 건, 그런 사람이 어느 순간 클럽 회장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가 운영하는 하미테는 원래 테린이가 많은 클럽이었다. 그렇게 시작했지만 회원들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잡음도 생겼고, 4년 동안 회장을 맡아오던 전임 회장이 부상과 육아 문제로 활동하지 못하게 되면서 새 회장을 찾게 됐다. 그러다 가장 참여도가 높고 인성이 좋은 사람을 찾다 보니 "저밖에 없다"라는 통보를 받고 갑작스럽게 회장을 맡게 됐다고 했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세 명의 운영진이 함께 도와주겠다고 해서 수락했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했다.
"아마 하노이 모든 클럽 중 실력도 구력도 제일 안 되는 회장의 탄생이었죠."
이 말이 좋았다. 과장된 겸손이 아니라, 자기 위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의 농담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제는 실력으로 까이지는 않게 됐다고도 했다. 회장이 된 뒤 가장 신경 쓴 것도 결국 비슷했다. 회장에 걸맞은 실력을 키우자, 부끄럽지 않은 회장이 되자. 그게 가장 큰 기준이었다고 했다. 클럽을 운영하는 책임보다 먼저, 자기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운영 자체는 생각보다 담백했다.
경기이사와 총무가 따로 있어 그는 매주 정모 시간 안내와 참여 회원 체크 정도를 맡는다고 했다. 인원이 확정되면 경기이사가 대진표를 만들고, 총무가 정산을 맡는다. 회원일 때와 큰 차이는 없고, 굳이 차이를 꼽자면 회원들이 더 재미있게 칠 수 있도록 배려해 게임 수를 줄이는 정도라고 했다. 오히려 회장이 된 것이 자신의 테니스 일수를 더 늘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웃었다. 이런 대목이 좋다. 대단한 리더십 서사보다, 결국 더 자주 코트에 나가게 됐다는 말이 더 이 사람답게 느껴진다.
하미테가 지향하는 분위기도 분명했다.
그는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하는 건 없다고 했다. 다만 항상 회원을 우선으로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주는 회원들, 그래서 항상 웃으며 즐길 수 있는 클럽. 그게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했다. 처음 시작할 때 테린이들과 파트너 하기 싫어하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클럽으로 갔고, 함께 배려하던 사람들만 남았다고 했다. 그 결과 2년 전 하노이 오픈에서는 하미테 클럽 회원들이 거의 전부 본선에 진출하는 성과까지 냈다. 처음에 남은 사람들이 결국 클럽의 색이 되고, 그 색이 실력으로도 이어졌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요즘 하노이에서 클럽을 운영하며 가장 힘든 건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피클볼이다. 베트남에서는 피클볼 열풍으로 기존 테니스 클럽의 절반 이상이 피클볼장으로 바뀌고 있고, 지금도 계속 변경 중이라고 했다. 멀쩡하게 이용하던 클럽이 하루아침에 피클볼장으로 바뀌어 쫓겨나고, 새 구장을 구하지 못해 더 멀리 가야 하고, 구장이 멀다는 이유로 참석하지 않는 회원도 늘어난다고 했다. 그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이러다 테니스 못 치나 싶을 정도"라는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좋아해서 계속 치는 운동이지만, 그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코트를 지켜낼 수 없는 현실이 그 안에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하노이의 테니스 환경 자체는 좋았다고 말했다.
대부분 우레탄 코트이고, 비용은 한 시간 기준 한화 약 7천원에서 1만5천원 수준이라고 했다. 가장 큰 차이는 역시 볼보이였다. 하노이에서는 볼보이 덕분에 한 경기 진행이 훨씬 빨라지고, 공 줍는 시간도 크게 줄어든다고 했다. 비가 오면 볼보이들이 밀대로 물기까지 제거해 준다고 했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는 코트 사용료도 무료였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요즘 2볼 1캔으로 많이 치는 편인데, 하노이에서는 보통 4볼 1캔을 쓴다고 했다. 같은 테니스를 쳐도 현장의 방식은 꽤 달라 보였다.
한인 커뮤니티 분위기에 대해서도 그는 좋은 쪽으로 이야기했다.
요즘은 재베트남 한인 테니스 협회가 생기면서 분위기도 더 좋아졌다고 했다. 교류전 지원도 있고 대회도 자주 열려서, 하노이에서는 테니스가 개인 운동이라기보다 커뮤니티 안에서 함께 굴러가는 생활 체육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테니스가 어떤 존재인지 묻자, 그는 이렇게 정리했다.
"수많은 스포츠를 접해봤지만 마지막까지 함께할 스포츠, 지금까지 겪어본 운동 중 가장 깊이 있는 운동,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픈 운동."
5년 뒤에도 하노이에서 테니스를 치고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는 망설임 없이 "당연하죠"라고 답했다. 어떤 사람은 테니스를 잘 치게 되기 전에 먼저, 오래 칠 사람이 된다. 용균님은 지금 그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늦게 시작한 사람에게는 늦게 시작한 사람만의 테니스가 있다.
처음엔 민폐가 되기 싫어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뒤에서 들은 말들이 자극이 되어 더 열심히 쳤고, 결국에는 실력도 구력도 제일 안 되는 회장이라는 농담을 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하노이에서 아침마다 복식을 치고, 테린이들이 편하게 남을 수 있는 클럽을 운영하며, 피클볼 열풍 속에서도 테니스 코트를 지켜내려 애쓰고 있다.
왜 이렇게 늦게 테니스를 시작했니.
그가 3년 전의 자신에게 건넨 이 말은, 어쩌면 지금 테니스를 망설이는 누군가에도 똑같이 건넬 수 있는 말인지 모른다. 늦게 시작했어도 괜찮고, 혼자 시작했어도 괜찮고, 처음엔 좀 민폐여도 괜찮다. 계속 치는 사람만이 결국 자기 자리를 갖게 된다. 용균님의 4년은 그걸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조용균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