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KO TEN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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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2026.06.08

끝나기 5분 전, 빗자루를 드는 사람들

끝나기 5분 전, 빗자루를 드는 사람들

Q.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도쿄에서 작은 광고제작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박재희입니다. 영상디렉터이자 포토그래퍼예요. 2010년에 일본으로 건너와서 지금까지 쭉 도쿄에 살고 있습니다.

Q. 테니스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2013년에 일본에서 처음 시작했어요. 그때 사적으로도 가깝게 지내던 일본인 회사 동료가 한 명 있었는데, 학창 시절에 소프트테니스부였대요. 경식 테니스도 한번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둘이 쇼핑센터 안에 있는 테니스 스쿨에 같이 등록했죠. 토요일 오전반이었어요. 레슨 끝나면 점심으로 라멘에 맥주 한잔. 그게 한동안 주말 루틴이었어요.

Q. 일본에서 처음 테니스를 시작했을 때, 한국에서 생각하던 테니스 이미지와 다른 점이 있었나요?

많이 달랐어요. 한국에 있을 땐 테니스가 골프 같은 자리에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선수가 아니라면 시간이랑 돈에 여유 있는 성인이 하는, 좀 고급스러운 취미. 그런 이미지였어요. 그런데 일본 스쿨에 가보니까 20대 초중반부터 6, 70대 어르신까지 나이대가 다 섞여 있더라고요. 다들 건강하게, 가볍게, 동네 운동처럼 쳤어요. 그걸 보면서 이거라면 평생 할 수 있겠다 싶었죠.

Q. 요즘은 보통 어떤 방식으로 테니스를 치고 계신가요?

주 1회 평일 저녁 스쿨 레슨을 기본으로 두고, 나머지는 앱으로 게스트 참가를 해요. 평균 주 2, 3회 정도요. 게스트로 모이는 자리가 복식 위주라서 거의 9 대 1로 남자 복식을 칩니다. 본업 특성상 시간대가 정해져 있질 않아서 평일이든 주말이든, 오전이든 오후든 짬 날 때 급하게 두 시간 정도를 끼워 넣어요. 바쁠 땐 작업실 바로 앞 구립 코트에서 한 시간씩 서브만 치다 오기도 하고, 일이 없을 땐 일주일 내내 나가기도 하고요.

Q. 도쿄에서는 보통 코트를 어떻게 예약하고 이용하나요?

도쿄에서는 구나 시가 운영하는 코트를 매월 추첨으로, 시간 단위로 빌려 써요. 보통 1, 2시간 단위고요. 관리자가 상주하니까 특정 클럽이 코트를 독점하거나 이용자끼리 트러블이 나는 일이 거의 없어요. 인조잔디 코트가 많은 편이고요.

Q. 일본의 테니스 스쿨은 보통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나요?

학원 같은 거라고 보시면 돼요. 기업이 운영하는 스쿨에 8명에서 12명 정도가 정해진 시간에 모여서 레슨을 받아요. 코치 한두 명이 진행하고, 입문, 초급, 초중급, 중급, 중상급, 상급 이렇게 실력별로 반이 나뉘어 있어요. 학창 시절 체육 수업처럼 코치가 시범을 보이면 학생들이 따라 하고요. 월별로 테마를 정해서 같은 동작을 반복해요. 기본기를 워낙 강조하니까 반복이 많죠. 수업 후반에는 미니 게임을 하고요. 기초 스윙이나 스텝부터 전술 훈련, 복식 포지션 움직임까지 꽤 체계적이에요. 게스트 참가나 모집은 테니스베어라는 앱을 써요. 재밌는 게, 여기선 구력보다 '레벨'로 실력을 표현해요. 많은 사람이 스쿨에서 치다 보니까 스쿨 레벨을 기준으로 본인 레벨을 설정하거든요. 그래서 실력 지표가 상당히 객관적인 편이에요.

Q. 일본 동호인들과 함께 치면서 인상 깊었던 코트 매너가 있었나요?

이게 일본 코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데요. 코트 대여 시간이 끝나기 5분 전쯤 되면 사람들이 큰 브러시를 들고 인조잔디를 쓸어요. 다음 팀이 깨끗한 코트에서 시작할 수 있게요.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그렇게 해요. 이용 시간도 칼같이 지켜요. 먼저 들어가거나 늦게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경기 중에 촬영도 자제하고요. 상대가 불편할까 봐요. 찍고 싶으면 보통 사전에 모집 단계에서 물어보거나 공지해요.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 라인 콜이에요. 누가 봐도 미스콜인데도 상대 콜을 존중하고 시비가 안 붙어요. 뭐,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죠. 그래도 겉으로 싸우는 일은 없어요.

Q. 테니스가 끝난 뒤의 모임 문화는 어떤 편인가요?

앱으로 모집해서 치는 게스트 매칭은 대부분 테니스만 치고 바로 헤어져요. 정기적으로 모이는 동호회는 모임 끝나고 회식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코트에서 음식을 먹는 건 거의 없어요. 기껏해야 바나나나 프로틴 바 정도. 음식을 싸 오는 문화도 거의 없고요. 한국이면 다 같이 뭘 먹으러 가거나 음식을 나눠 먹는 게 익숙하잖아요. 제 생각엔 코트 빌리는 시간이 길지 않으니까, 그 시간만큼은 테니스에만 집중하려는 것 같아요.

Q. ‘아, 나 조금 늘었구나’라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나요?

이게 좀 의외일 수도 있는데요. 대회 성적도, 이긴 경기도 아니에요. 레슨에서 코치가 예전보다 공을 더 세게 쳐줄 때예요. 그때 '아, 내 실력을 인정받고 있구나, 늘었구나' 싶어요. 점수판에는 안 적히는, 저만 아는 신호죠.

Q. 반대로 테니스가 잘 안 풀리는 날은 어떻게 넘기시나요?

기복이야 조금 있지만, 슬럼프가 오거나 길게 안 풀린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잘 안 되는 날에는 안 되는 이유를 찾으려고 해요. 몸 컨디션이 안 좋구나, 오늘은 기분이 업돼서 힘이 들어갔구나, 하는 식으로요. 그러고는 그냥 꾸준히 쳐요. 버티는 타입인 것 같아요.

Q. 지금까지 테니스를 계속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출산이랑 육아로 테니스랑 잠깐 멀어진 적은 있어요. 그래도 "그만 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어요. 오히려 아이들이 좀 크면서 테니스가 다른 의미로 다시 들어왔어요. 아이들이 테니스를 시작했거든요. 코트에서 공놀이하듯 같이 쳐 봤는데, 그때 애들이 즐거워하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질 않아요. 아이들이랑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취미라서 못 끊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나이 들면서 건강을 위해 평생 운동 한두 가지는 해야겠다 싶기도 하고요. 테니스는 접하기 쉽고 6, 70대 어르신도 많이 치니까, 평생 할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재희 님에게 테니스는 지금 어떤 존재인가요?

제 일이 짧은 기간에 스트레스가 확 몰리는 경우가 꽤 많아요. 그럴 때 나가서 두세 시간 치고 오면 리프레시가 되고, 심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많이 치유돼요. 지금 제 삶에서 분명히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이렇게 도움받으면서 즐기고 싶어요.

재희 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테니스가 꼭 시합을 이기거나 실력이 느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 오전 레슨이 끝나고 먹던 라멘과 맥주 한 잔.

코트 시간이 끝나기 전, 자연스럽게 브러시를 드는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코트에서 공을 주고받던 순간들.

어쩌면 그런 장면들이 오래 테니스를 치게 만드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