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 사는 한 코치가 있다.
한국에서 8년간 식당을 운영하다가 코로나로 가게를 접고, 다시 호주로 건너온 사람. 지금은 시드니에서 한인 동호인을 가르치고, 1년에 3~4번 대회를 열며, 한국 테니스 브랜드를 호주에 소개하고 있다. 본명보다는 GGT코치로 더 잘 통한다.
그에게 테니스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저의 취미이자 휴식의 숨구멍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식업으로 힘들게 지낼 때 항상 쉬어갈 수 있던 저의 쉼터 같은 존재였습니다."
모든 것은 중학교 1학년, 영어를 거의 못 하던 한국 소년이 호주로 유학을 떠나면서 시작됐다. 그곳에서 삼촌이 라켓 한 자루를 쥐여주며 말했다. "호주는 나가 놀면서 영어도 배우고 친해지는 거야." 그렇게 그는 1년 동안 동네 벽치기도 하고, 친구들과 공을 주고받으며 테니스를 알게 됐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난 어느 날, 어머니께 직접 말씀드렸다. 테니스를 진지하게 배우고 싶다고. 레슨비를 지원해달라고. 그렇게 4년의 선수 생활이 시작됐다. 고3까지였다. 거기서 멈췄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과 레슨비 지원이 끊겼고, 선수의 꿈은 그곳에서 정리됐다.
호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바텐더로 일하면서 그는 자신이 서비스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모습을 눈치챈 어머니가 한국행을 권했다. 공부를 안 할거면 해병대나 가라는 말이었다.
전역 후에는 공부가 자신과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고 요식업으로 들어갔다. 홀에서 시작해 주방을 배우고, 8년의 경력 끝에 한남동그집이라는 브랜드를 차렸다. 호주로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은 늘 마음 한구석에 있었고 8년 동안 모은 돈으로 호주로 갈지 고민도 했다. 하지만 외동인 자식이 다시 떠나는 걸 어머니가 어려워했고, 그래서 한국에 남아 가게를 시작했다.
장사를 시작한 지 1년 반, 코로나가 찾아왔다. 1년을 더 버티다가 결국 가게를 접었다. 지인 가게의 관리자로 자리를 옮겨 다시 일어서려던 때, 코로나의 끝자락과 호주 국경 개방 소식이 거의 동시에 찾아왔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지금 아니면 다시 못 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워킹홀리데이로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그 8년 동안, 테니스는 한 번도 그의 손을 떠난 적이 없었다. 동호회 회장으로, 운영진으로, 최소 세 개의 동호회를 옮겨 다니며 꾸준히 라켓을 잡았다. 결국 그것이 지금 시드니에서 그가 만들어가고 있는 모든 것의 뿌리가 됐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돌아온 그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영주권 취득 후 코치 일을 시작했다.
지금 GGT(Good Game Tennis)아카데미는 코치 네 명이 함께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모두 한인 코치이고, 레슨 비중은 한인 80%, 외국인 20% 정도다. 1대1 한 시간 레슨은 코트비를 포함해 127 호주달러로. 호주 평균보다 살짝 높은 편이라고 했다.
GGT라는 이름의 G는 코치님의 어린 시절 별명 gguy에서 왔다. 친한 형이 만들어준 이름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 줄로 자신을 소개해달라는 말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재미와 추억을 학생들과 같이 만들어 가는 테니스 코치라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레슨을 묻자, 잠시 웃더니 아내 이야기를 꺼냈다.
"와이프를 가르칠 때인 거 같네요. 회원들에게는 돈을 받고 가르치다 보니 뭔가 말도 이쁘게 나오고 저도 포기 없이 가르치게 되는데, 와이프는 뭔가 편한 사람이고 더 잘해줘야겠다는 욕심이 더 앞서 나가다 보니 욕심을 부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기본기는 다 가르쳤지만, 역시 운전, 운동 '운'자 들어가는 것은 가족끼리 가르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2025년, 그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 일이 또 한 번 방향을 바꿨다.
"작년에 부상을 당하고 나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테니스 코치로 쭉 사는 것도 행복하지만, 테니스에 관련된 용품을 한국에서 가져오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코트에 나가지 못하던 시간이 새로운 시야를 열었다. 그는 한국을 방문해 여러 업체들과 미팅을 잡았다. 그리고 여섯 개의 한국 테니스 브랜드(네버폴트, RTP 뎀프너, Smaxh, 퍼펙트 테니스공, 론앤디매르, Winbull 의 호주 판매권을 가져왔다.
타겟은 한인 시장이 아니다. 호주 전체였다.
"현지 시장에 부족한 부분을 고려해서 선정하게 되었고, 이미 긴 시간 동안 지켜보았던 브랜드들입니다. 테니스 코치를 시작하기 5년 전부터 언젠가는 저런 회사랑 같이 성장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의 사업 비전은 부상 이후 갑자기 떠오른 것이 아니었다. 코치 일을 시작하기 5년 전부터, 그러니까 한국에서 한남동그집을 운영하던 시키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그림이었다. 한국 테니스 시장이 하락세에 접어든 지금이, 해외 진출을 원하는 한국 업체에게는 오히려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1년 안에 그가 그리는 그림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라켓에서 그립, 의류, 신발 깔창까지 한국 브랜드로 채운 풀라인업을 호주 시장에 올리는 것이 목표다.
브랜드를 호주 시장에 소개하는 것만이 그의 목표는 아니다.
그는 테니스를 매개로 한국 사람들이 호주를 경험하는 방식까지 바꾸고 싶어 한다.
"단순 여행으로만 오는 호주, 단순 워홀로만 오는 호주가 아닌 한 가지의 취미와 자연을 표현하는 그런 이미지를 가져가보고 여행 사업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한국 브랜드들도 자연스럽게 호주에 스며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7년 1월, 그는 한국 동호인 16명을 데리고 호주오픈을 찾는다. 한국에서 유명한 두 명의 코치와 함께 떠나는 6박 8일 일정이다. 호주오픈 주요 경기 관람, 레슨, 여행이 함께 담긴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 투어는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그가 꿈꾸는 그림은 그보다 크다.
"목표는 그랜드 슬램을 Tway와 함께 단독으로 계획하여 스포츠 여행 패키지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호주오픈을 시작으로,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까지. 그랜드 슬램 네 개를 모두 다루는 스포츠 여행 패키지를 항공사와 함께 기획 하는 것. 그가 Tway를 고른 이유도 분명했다. 아내와 자주 타는 항공사라는 익숙함, 일반인이 부담 없이 탈 수 있는 가격대, 그리고 Tway가 해외 스포츠 투어에 관심이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 그 세 가지가 만나 하나의 그림이 됐다.
5년 뒤의 모습을 묻자, 그는 먼저 아카데미 이야기를 꺼냈다.
"아카데미의 기본 베이스로 여러 회원들과 월화수목금토일 주7일을 테니스를 치고 싶습니다. 학생들이 맨날 그럽니다. 선생님, 테니스 칠 수 있는 시간과 요일과 동호회가 없어요."
현재 GGT 동호회는 월수토일, 주 4일 운영된다. 5년 안에는 주 7일로 확장하고, 각 요일마다 다른 콘셉트를 입히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월요일은 나이키 데이, 화요일은 아디다스 데이. 요일마다 다른 색을 가진, 콘셉트 있는 동호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코치, 사업가, 여행 기획자. 그가 그리는 그림에서 세 가지는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호주의 자연과 한 가지 취미를 묶은 여행 사업이 한국 사람들을 호주로 데려오고, 그 흐름이 한국 테니스 브랜드의 호주 안착으로 이어진다. 자영업에서 코치로, 코치에서 사업가로, 그리고 한국 테니스가 호주에 닿는 작은 통로로.
그의 그림은 하나의 길로 이어진다.
인터뷰 중간에 그가 던진 한 문장이 오래 남는다.
"부모의 선택으로 인해 못해보았던 테니스를, 선수로서는 아니지만 다시 저의 꿈을 테니스로 시작할 수 있게 되어 너무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고3에 멈춰버린 꿈을 어른이 되어 다시 시작한 사람.
시드니에서 그는 그 꿈을 매일 새로 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