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어느 시기였다.
코로나가 길어지며 코트에 나가는 일이 어려워졌고, 손이 심심해졌다. 매주 토요일 오후의 루틴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언가 어색한 시간이 남았다.
"이럴 거면 스트링 머신을 사서 집에서 줄이라도 매자."
그 단순한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물론 그 결정은 혼자 내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Yoon 대표는 와이프에게 최종 컨펌을 받아야 했다. 그는 웃으며 회상했다. "승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집에 들어온 머신은, 결국 줄을 매는 도구로만 끝나지 않았다.
스트링 작업을 직접 하게 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열었다. 텐션, 스트링 종류, 매는 날짜. 데이터가 쌓였다. 그런데 그 데이터를 모바일에서 다시 들여다보려 할 때마다 뭔가 어긋났다. 손가락으로 확대하고, 축소하고, 다시 스크롤하고, 누군가에겐 사소한 불편일 수 있었지만, 그는 그 불편을 몇 주 동안 혼자 곱씹었다.
그러다 어느 날 와이프에게 말했다. 내가 쓸 앱을 직접 만들어볼까. 와이프의 답은 단숨에 들어왔다.
"그럼 만들어봐"
그 한 문장이 String GOAT의 진짜 출발점이었다.
당시는 AI의 도움을 받기 어려웠던 시절이었고, 그는 단순한 앱 하나를 혼자 만들고 서비스로 배포하는 데 1년을 들였다. 그는 같은 버그를 끝없이 다시 만나며 코드를 다듬었다.
86년생, 체육학을 전공한 1인 개발자.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그는 "몇십 년 만에 자기소개를 하는 것 같다"며 가볍게 웃었다. 테니스는 1999년, 13살에 처음 시작했다. 시골 학교에서 테니스를 전공한 체육 선생님께 자연스럽게 배웠다고 했다.
지금은 수원 만석 테니스코트에서 토요일 2시쯤 라켓을 잡는다. 스타일은 서브 앤 발리. 길게 랠리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는 "발리로 이기는 게 더 재밌다"고 했다.
특별히 개발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었다. 6~7년 전 우연히 파이썬을 접한 게 시작이었다. 그 우연이 그를 끌고 갔다.
"코딩하는 게 운동만큼 매력 있다고 느껴지더라구요."
운동을 좋아하던 그에게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AI의 도움 없이 구글링으로 버그를 찾고, 적용하고, 또 다른 버그를 만나고, 다시 해결하고를 반복하는 그 막막한 과정도 그에게는 일종의 훈련 루프였다.
"자괴감이 들 정도로 힘든데, 이상하게 조금씩 나아지는 결과물을 보고 있으면 운동할 때랑 비슷한 도파민이 터지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됐습니다."
그에게 코딩과 테니스는 다른 일이 아니었다. 둘 다 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래서 더 집착하게 된다는 점에서 같은 운동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그는 막연하지만 어떤 시스템을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고 했다. 파이썬을 배우면 원하는 걸 만들 수 있다는 말이 그의 안에 잠들어 있던 그 욕망을 깨웠다. 그렇게 비전공자였던 그는, 어느새 개발 일을 하고 있었다.
제품의 이름은, 그의 와이프가 지었다.
본인이 처음 낸 이름은 둘 다 별로였다고 한다. 부부가 이거 어때 저거 어때 핑퐁을 주고받다가, 어느 순간 와이프가 던진 한 단어가 모든 걸 정리했다.
"스트링계의 GOAT가 되어보자."
GOAT, Greatest of All Time. 그는 그 순간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서비스의 이름이자, 비전의 이름이었다.
시간이 지나, 2022년에 출시한 String GOAT는 178개국에서 다운로드됐다.
그 숫자에 대한 본인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당시 앱은 한 번 결제하면 끝나는 평생 구매권 형태였고, 그는 "달러를 벌었구나" 정도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화려한 성과보다는 작은 데이터 포인트로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정작 그를 흔든 건, 그다음 결정이었다.
평생 구매권 모델을 월·연 구독 SaaS로 전환하는 일. 그는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표현했다. 검증되지 않은 시장에서, 정답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결국 본인이 본인을 밀어붙여야 했다.
흥미로운 건 그가 제품을 만들면서 시장의 한구석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스트링샵을 위한 B2B 프로그램은 이미 존재했다. 그러나 동호인이나 홈 스트링어가 자기 데이터를 쌓고 관리할 수 있는 B2C 글로벌 서비스는 어디에도 없었다고 했다. 워낙 니치한 시장이지만, 그는 그 니치함을 약점이 아니라 정체성으로 삼기로 했다.
그래서 String GOAT는 두 분류의 사람을 위한 서비스가 됐다. 자기 스트링 교체 기록을 꾸준히 남기는 동호인, 그리고 그 기록이 거의 필수인 홈 스트링어. 그는 이 두 그룹에 개발과 마케팅의 무게를 집중시키고 있다고 했다.
이쯤 되면 그가 마주한 가장 큰 벽이 어디인지가 분명해진다.
기능이 아니다. 마케팅이다.
그는 마케팅을 "마의 마케팅"이라고 불렀다. 결과가 안 보이는 시간을 견디는 일은 코드 한 줄 다듬는 일과는 결이 다르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그가 가진 무기는, 같은 도파민 루프를 마케팅에도 적용하려는 시도였다. 자괴감과 도파민. 코트와 의자. 결국 같은 종류의 끈기였다.
데이터 락인은 양날의 검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기록이 쌓일수록 사용자는 다른 서비스로 옮기기 어려워진다. 동시에, 동호인마다 스트링 교체 시기가 천차만별이라 신규 유입에는 늘 마찰이 생긴다. 그래서 그는 기존 엑셀이나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이미 기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단 한 번의 클릭으로 데이터를 가져올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고 했다. 진입 문턱을 낮추는 기능을, 1인 개발자가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제품의 결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그리는 String GOAT의 목표는 명확했다.
"제 개인적인 목표는 저와 같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전 세계에서 찾아서 String GOAT 서비스로 모이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Wilson, Yonex, Babolat 같은 글로벌 스트링 브랜드와 협업하며 함께 성장하는 그림. 그러기 위해서는 글로벌 기업들이 갖지 못한 데이터를 1인 개발자인 자기가 잘 쌓아둬야 한다고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
코로나 때 코트에 못 나가서 시작한 사업이, 결국 다시 코트로 돌아가기 위한 사업이었다. 시작점과 종착점이 같은 그림이라는 게, 어쩌면 그가 그렇게 멀리까지 갈 수 있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같은 길을 가려는 1인 개발자에게 한 마디를 부탁하자, 그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더니 그는 자신이 매일 마주하는 풍경에서 답을 꺼냈다.
"개발은 이제 진입장벽이 많이 낮아졌어요. 최근 들어서 개발이 어렵다고 한 개발자를 한 명도 못 본 것 같아요. 그런데 100이면 100 모두 마케팅이 너무 어렵다고 합니다."
"저도 그래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스로 무너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것 같아요. 진짜 멘탈 관리 잘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코로나에 손이 심심해서 산 스트링 머신 한 대가, 4년 뒤 글로벌 SaaS의 출발점이 될 거라고는 본인도 그때 몰랐을 것이다.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도, 그렇게 쌓이고 다시 읽혀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Yoon 대표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