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말, 어느 날이었다.
성적은 인서울이 가능한 정도였고, 체대를 가면 SKY도 노려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는 어머니께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체육쌤이 되고 싶어요."
감정평가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공부해서 회사원이 되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땐 그러라면 그러는 줄 알았다.
그리고 30년 가까이 지나, 그는 호주에서 사비를 들여 테니스 코치 자격증을 땄다.
호주 퀸즐랜드 선샤인 코스트에 산 지 17년. 시민권을 받은 지는 7년이 됐다.
직장 동료들이 동작과 학습이 빠르다며 붙여준 별명 '닌자'에 영어 이름 Abe가 더해져, 그는 스레드에서 ninjabe_sunshine으로 불린다.
그는 아내와 네 아이가 있는 아빠이기도 하다.
닌자베 님이 처음 라켓을 잡은 건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부모님을 따라 시작했지만 따로 레슨을 받지는 못했다. 당시에도 레슨비는 부담이었다. 대학 1학년부터 1년 반 동안 동아리에서 기초를 다지다,
2학년 하반기에 기독교 동아리로 옮겨가며 테니스는 캐주얼하게만 쳤다. 직장 다닐 때도, 호주로 이민 와서도, 같이 칠 사람이 있을 때만 잡는 운동이었다.
그러다가 7년 정도 골프에 빠졌다.
"7년 해도 느는 거 같지도 않고 스트레스만 더 받아서요. 게다가 아이들이 넷인데 주말에 아빠랑 같이 시간 보내는 걸 원하더라구요."
그렇게 4년 전, 그는 골프를 정리하고 테니스로 돌아왔다. 골프는 지금도 연 3~4회 정도 치는데 사실상 접은 셈이다.
본인은 구력을 6년이라고 말한다. 처음 잡은 때부터 따지면 30년이 넘지만, 그렇게 말하면 모임에서 사람들이 "오바"라고 한다. 6년 정도라고 해야 다들 수긍한다.
테니스로 다시 돌아와 모임도 만들었다.
본인이 사는 선샤인 코스트는 한인이 적은 지역이다. 70km 남쪽 브리즈번에는 한인 테니스 클럽이 8개나 있고 한인 테니스협회도 있지만, 선샤인은 그런 인프라가 없었다. 4년 전, 지인 한 명과 둘이서 시작했다. 토요일 새벽에 모여 완전 초보자들에게 레슨을 해주고, 비슷한 레벨끼리는 랠리를 친다. 2~3시간씩, 4년째 이어지고 있다.
모임을 만들고 1년 뒤, 그는 호주에서 사비를 들여 코치(비기너-중급) 자격증을 직접 땄다.
"막내아들이랑 아내 가르치려고 딴 게 가장 컸고, 나중에 나이 들어 은퇴하고는 동네서 코치하고 싶어서 땄답니다. 40대 중반에 따서 모임 운영하고 한 10년이 지나면 경력이 제법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막내와 아내, 한인 모임 멤버, 그리고 50대 중반의 본인. 자격증 한 장이 끌고 가는 시간표가 분명했다.
그가 코치 꿈을 다시 꺼낸 건 정확히 테니스로 돌아온 4년 전이었다.
"원래는 체육쌤이 되고 싶었는데 대신 테니스 코치로라도 해보자, 뭐 이런 생각이었던 거 같아요."
그 4년이 늘 가볍지만은 않았다.
모임 3년 차까지는 멤버가 5명 미만이었고, 가끔은 2~3명이라 접어야 하나 고민할 때도 있었다. 그 사이 코치 자격까지 땄지만 인원은 늘지 않았다. 게다가 키워놓을 만하면 빠지는 일이 반복됐다. 누군가는 스시 가게를 차렸고, 누군가는 카페를 열었고, 누군가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갔다. 호주 한인 사회의 자영업 비중이 한 동호인 모임의 명단 위에 그대로 찍혔다.
그러다 4년 차에 모임이 풀렸다.
회원이 늘었고, 다들 잘 나오기 시작했다. 본인은 그 변곡점을 의도적인 무엇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우주가 저의 인내심과 끈기를 시험한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진심을 세상이 알아주는 데 4년 정도 걸린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멤버 10명을 채워 클럽을 공식 등록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가슴이 뛴다고 했다.
실력 쪽도 4년 동안 차곡차곡 쌓였다.
복귀 후 1년 차에는 UTR 하나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떨어지면 신경이 쓰였고, 약점을 찾으면 따로 시간을 내 연습했다.
2년 차에는 지역 클럽 싱글 컴피티션 Division 3에서 시즌 우승을 하며 Division 2로 올라섰다. 3년 차부터는 복식을 늘렸고, 4년 차인 올해는 남자복식 클럽대항전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때 단식 80, 복식 20이던 비중은 이제 정확히 반대가 됐다.
지금은 UTR을 가끔씩 보고 흐뭇해하는 게 일반이라고 했다. 목표는 UTR 5.0. 2~3년 안에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기억에 남는 경기를 묻자, 그가 가장 먼저 꺼낸 장면은 디비전 우승 결승이었다.
접전은 아니었지만 코트 사이드에 아내와 네 아이가 다 와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골프를 접은 이유로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주말에 아빠랑 같이 시간 보내고 싶어 한 그 아이들이, 4년 후에는 아빠 우승 결승을 코트 사이드에서 보고 있었다.
호주에서 테니스를 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닌자베 님이 한국과 비교해서 가장 먼저 꺼낸 단어는 UTR 이었다.
"어느 클럽을 가던지 제 UTR 레벨이 있기에 참여가 어렵지 않은 것도 좋은 거 같습니다."
어느 클럽에 가도 본인 등급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어울릴 자리가 생긴다. 거기에 코트 부킹 전쟁이 없다.
"코트는 항상 자리가 있고 풀 부킹 때문에 못 치는 경우는 거의 없구요."
지역 협회와 클럽의 연결도 단단하다. 클럽 행사는 협회가 물심양면 지원하고, 운영은 오래 친 동호인 자원봉사자들이 도맡는다. 아이들과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클럽 차원에서 잘 갖춰져 있고, 비용 부담도 크지 않다.
다만 실내코트가 거의 없어서, 비가 줄곧 내릴 때는 아쉬운 부분이 크다고 했다.
닌자베 님에게 테니스가 어떤 존재인지 물었다.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좋은 기폭제라 생각합니다. 테니스 치려 더 열심히 살게 되는 거 같네요."
그에게 테니스는 일터, 가정, 커뮤니티에서 주어진 역할을 굴러가게 하는 베이스이자, 동시에 그 모든 역할을 더 잘 해내고 싶게 만드는 동력이었다.
골프 7년을 접고 돌아온 자리에 모임을 만들고, 자격증을 따고, 가족을 가르치고, 50대 중반의 코치를 그리는 사람.
못 이룬 꿈을 호주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고1 말에 막혔던 그 한 마디는 어쩌면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모양을 바꿔, 30년 뒤 호주 선샤인 코스트의 한 코트 위에 다시 펼쳐졌을 뿐이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닌자베 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