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생, 시흥에 사는 이현욱 님이 라켓을 처음 잡은 건 2023년 6월이었다.
쉰을 한참 넘긴 나이였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에는 오래 남아 있던 장면 하나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올림픽공원 테니스장에서 한 번 친 그날의 기억이었다.
레슨비가 비싸 손을 못 댄 채 어른이 됐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회사에서 법인카드로 운동을 배워보라는 말을 들었고, 그 한마디가 오래 미뤄두었던 테니스를 다시 꺼내게 했다.
첫 레슨 날, 코치는 그의 자세를 보고 한마디 했다고 한다.
"골프 스윙 덕에 자세가 나오시네요."
그 말 덕에 두 번째 레슨부터 곧장 백핸드 진도가 나갔다. 10년 넘게 설렁설렁 친 골프가, 30년 만에 잡은 라켓의 첫 발판이 된 셈이었다.
남들보다 진도를 빨리 나가고 '핫테'라는 테니스 밴드에 가입해 활동하다 보니 골프보다 테니스가 더 재미있어진 건 금방이었다. 순간순간 득점이 오고 가는 그 역동성에 테니스에 빠졌다고 했다.
현욱 님이 속한 핫테클럽은 3년 전, 레슨 받은 지 3~6개월밖에 안 된 친구들이 "기존 클럽은 구력 3년 이상이 아니면 받아주지 않으니 그냥 우리끼리 치자"는 마음으로 네이버 밴드에서 만든 클럽이라고 했다. 지금은 시립대회 입상자와 전국대회 준우승자도 나올 만큼, 시흥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클럽이 됐다.
그리고 배운 지 6개월 만에 대회에 나갔다.
문제는 그날, 대회장에서 왼쪽 무릎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됐다는 것이다. 재건술을 받았고, 그렇게 1년의 공백기가 시작됐다. 그 1년 동안 회사 옥상에서 빈스윙 연습기를 만들어 혼자 휘둘렀고, 시간이 지나서는 골프 그물망과 볼머신을 들였다. 코트에 못 가니까, 회사를 코트로 만들었다. 일반 직원이 아닌 회사 임원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다.
2024년 10월, 1차 재활이 끝났다. 헬스클럽에서 6개월간 PT도 받았고,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코트로 갔다.
왼쪽 무릎이 다시 악화됐고, 5개월을 쉬며 병원만 다녔다. 그 사이 들어간 돈만 200~300만원이였다.
"그때 왜 재활을 제대로 못 했을까. 왜 웨이트를 안 했을까."
같은 자리를 두 번 다친 뒤에야 그는 이 말을 자주 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그의 일주일은 꽤 빡빡하게 짜여 있다.
월요일은 회사에서 머신볼 한 시간, 저녁에 재활 PT.
화요일도 머신볼 한 시간.
수요일은 머신볼 뒤 저녁 테니스 모임에서 4게임.
목요일은 다시 머신볼과 재활 PT.
금요일은 본인 말로 "대충 쉬는 듯함."
토요일과 일요일은 모임이 있으면 나가고, 없으면 쉰다.
이렇게 매달린 시간의 보상은 최근에 왔다. 이번 시흥시 시립대회에서 매번 예선 탈락만 하던 그가 처음으로 8강에 올랐다. 8강에서 더 올라가지는못 하고 8강의 벽에 막혔다. 상대는 동호인들 사이에서 흔히 말하는 "좀비 테니스"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끝까지 다 받아 넘기는 스타일. 계속 공이 넘어오니 섣불리 공격을 못 했고, 그 답답함 속에서 아리랑볼에 대한 대처 능력을 키우고 기본기를 더 다듬기로 마음먹었다.
그 패배는 좌절보다 다음 숙제를 남긴 경기였던 것 같다. 어디를 더 보완해야 하는지, 무엇을 더 다듬어야 하는지 알게 된 경기.
인터뷰 끝 무렵, 5년 뒤에도 테니스를 치고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현욱 님의 대답은 예상보다 담담했다.
"지금은 테니스가 저의 생활에 30% 정도 차지하는 존재인 것 같고, 앞으로 5년 후엔 테니스 못 치고 있을 듯 해요. 그때까지 무릎이 버틸지 몰라서요."
못 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오늘도 회사 옥상에서 빈스윙 연습기를 펴고 머신볼을 친다. 저녁이면 재활 PT를 받고, 주중 어느 날은 4게임을 들어간다.
어쩌면 현욱 님에게 테니스는 오래 미뤄뒀다가 뒤늦게 다시 만난 운동이면서, 동시에 지금 가장 진하게 붙잡고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5년 뒤엔 못 칠 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래서인지 현욱님은 지금 코트에 서 있는 시간을 더 놓치고 싶지 않아 보였다.
인터뷰 응해주신 이현욱 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