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어느 날이었다.
잡지 화보를 넘기다가 손이 멈췄다. 그 시기 패션 하우스들이 테니스 웨어를 한창 다루던 때였고,
페이지마다 파스텔 톤의 드레스를 입은 모델들이 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원래 예쁜 것에 시선을 많이 두는 편이었다.
그날은 그 화보가 유난히 오래 남았다.
"아, 나도 예전에 테니스를 했었지."
김나경 Soft Rally 대표가 다시 코트로 돌아온 건 그렇게, 아주 사소한 감정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12년 뒤, 그 감정은 한 브랜드가 됐다.
김나경 대표가 처음 라켓을 잡은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아버지 후배가 동네 고등학교 테니스 감독이었다는
인연으로 어머니와 함께 테니스를 시작했다. 1년쯤 치다가 팀이 해체되며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20대에 런던에서
윔블던도 여러 번 가봤지만 그때까지는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화보 한 장이, 멈춰 있던 마음을 다시 켰다.
"테니스하면 예쁘게 입고 운동할 수 있구나?"
그 한 문장이 출발점이었다.
화보 속 테니스는 예뻤지만, 실제 코트의 시작은 훨씬 소박했다.
첫 레슨 날 그녀가 입고 간 건 파스텔 드레스가 아니라 맨투맨과 츄리닝 바지였다.
하지만 그때 느꼈던 작은 간극은 오래 남았다.
처음에는 스스로를 위한 취향이었고, 나중에는 자신과 비슷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을 향한 감각이 됐다.
처음엔 그저 다시 시작한 운동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테니스는 점점 생활 안으로 깊이 들어왔다. 몇 년 동안은 하루에도 여러번 코트에 나갈 만큼
열심히 쳤고, 동호회 활동도 오래 이어갔다. 대회에도 나갔고, 사람도 많이 만났다. 운동을 계속하게 만든 건 코트 위에서
느끼는 즐거움이었다.
그 과정이 늘 가볍지만은 않았다.
함께 운동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운동 자체보다 사람을 다루는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스케줄을 맞추고, 분위기를 유지하고 관계 사이를 조율하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특히 다른 동호회와의 교류전에서 양쪽 멤버 사이에 작은 감정이 부딪히며 현장 분위기를 정리하느라 진땀을 뺀 적도 있었다.
다행히 마지막 자리에서 잘 풀고 끝났지만, 그 기억은 오래 남았다.
그럼에도 코트에만 들어가면 괜찮았다.
운동하는 순간만큼은 다시 즐거워졌고, 결국 그 즐거움이 테니스를 계속하게 만들었다.
2020년부터 2024년 사이, 그녀는 가장 많이 성장했다고 느꼈다.
레슨 위주의 시간을 지나 대회에 꾸준히 나가기 시작했고, 동호회 활동을 하며 룰을 익혔고, 선수들의 경기를 보는 시선도 넓어졌다.
그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남긴 건 천안의 한 대회였다.
랜덤 파트너 방식으로 치러진 경기에서 결승까지 올라갔지만, 정작 결승전에서는 본인 실수가 이어지며 5:3으로 밀리고 있었다.
민망했고, 화도 났다. 그 순간 마음을 한 번 돌렸다.
"이기고 싶다가 아니라, 공을 받고 집중하자."
그 한 문장 뒤로 흐름이 바뀌었다. 결국 역전 우승까지 이어졌다.
그 경기에서 남은 건 결과보다도, 스스로가 조금 달라졌다는 감각이었다.
같이 치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며 하나둘 코트를 떠났다.
결혼, 출산, 이직, 부상. 삶의 변화는 생각보다 크고, 운동을 오래 이어간다는 건 변화들 사이를 지나가는 일이기도 했다.
특히 여성 동호인의 경우 생활 패턴이 크게 바뀌는 시기를 겪으며 자연스럽게 코트와 멀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과정을 옆에서 오래 지켜보며, 김 대표는 한 가지 마음을 더 분명히 하게 됐다.
"그래도 나는 계속 치고 싶다."
지금도 그녀는 특정 소속 없이, 친분 있는 사람들이 부르면 가능한 시간에 맞춰 유연하게 코트에 나간다.
예전처럼 무리하게 많이 치기보다, 오래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테니스를 이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 마음은, 훗날 자신이 만들 브랜드의 방향이 되었다.
코트를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진이 쌓인다.
특히 함께 치는 사람들과의 순간은 기록 그 자체로 즐거움이 된다. 그런데 사진을 들여다보다 보면 자꾸 눈이 가는 장면이 있었다.
손, 라켓, 그리고 그립.
"클로즈업 되는 손이나 라켓이 조금 더 예쁘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아요."
그 사소한 아쉬움은 오래 남았다.
그러던 어느 겨울, 작은 기분 전환이 필요했던 시기에 해외 사이트에서 예쁜 오버 그립을 발견했고 직접 써봤다.
라켓 손잡이만 바꿨을 뿐인데 사진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플레이의 기분도 조금 바뀌었다.
Soft Rally의 첫 제품이 그립이 된 건, 어쩌면 그때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브랜드의 이름 의외로 빠르게 정해졌다.
AI가 제안한 여러 후보 중 'Soft Rally'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고, 고민 없이 고르게 됐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 역시 생각보다 오래 끌지 않았다. 직접 써본 해외 브랜드들을 기준으로 제조사를 찾았고,
비교적 빠르게 결이 맞는 협력사를 만났다.
디자인 방향은 분명했다.
무늬가 많고 복잡한 것보다, 단순하지만 색으로 분위기를 만드는 쪽. 여러 컬러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느낌.
지금의 FADE 그립은 그 취향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결과다.
촉감과 기능에 대한 고민도 물론 있었다. 오래 잡아도 손에 부담이 덜한 타입, 색감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쿠션감.
그럼에도 김대표가 가장 먼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기준은 분명했다. 기능을 말하기 전에, 먼저 예뻐야 한다는 것.
Soft Rally는 기능을 외면한 브랜드가 아니다.
다만 기능보다 먼저 시선이 머무는 감각, 손이 가고 싶어지는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브랜드에 더 가깝다.
그녀는 Soft Rally의 가장 큰 마케팅으로 실제 사용자의 리뷰를 꼽았다.
협찬이나 노출보다도, 직접 써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남기는 반응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실제로 가장 기억에
남는 후기도 그런 종류였다. 한 사용자가 직접 써본 뒤 부모님께도 선물했고, 두 분이 나란히 라켓을 든 사진과 함께
"때도 잘 타지 않는 것 같고, 참 예쁘다" 는 말을 보내왔다.
그 후기를 보며 그녀는 본인 부모님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브랜드는 단지 예쁜 용품이 아니라 같은 코트 위에 서게 해주는 작은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실감했다.
그녀가 테니스에서 오래 느껴온 기쁨 중 하나는, 결국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가족, 가까운 사람, 오래 알고 지낸 동호인들. Soft Rally 역시 단지 예쁜 그립을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런 시간을 조금 더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쪽으로 가고 싶어 보였다.
지금 김나경 대표가 바라는 Soft Rally는 너무 강하게 튀기보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기억되는 브랜드다.
과하게 드러나기보다 누구에게나 부담 없이 다가가고, 예쁘고 편안해서 결국 자주 손이 가는 브랜드.
언젠가 "그라데이션 그립 하면 Soft Rally" 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순간을 꿈꾼다.
테니스를 다시 시작하게 만든 건 예쁜 화보 한 장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뒤에 남은 건 단순한 취향이 아니었다. 오래 코트에 남은 시간, 계속 치고 싶다는 마음,
손과 라켓이 조금 더 예뻐 보이길 바라던 시건. Soft Rally는 그런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브랜드였다.
좋아하는 걸 오래 즐긴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있다.
Soft Rally는 그런 물건이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김나경 Soft Rally 대표님, 감사합니다.
